노다 히데키 연극 ‘밖으로 나왓!’

현대인의 암울한 디스토피아 그려내

2017-11-26     김성민 기자

정신없이 웃다가 섬뜩해진다. ‘빨간 도깨비’ 등을 통해 일본을 대표하는 연출가 노다 히데키의 연극 ‘밖으로 나왓!’은 가장 작지만 중요한 공동체인 가족의 민낯을 코미디 속에 비수처럼 숨겨놓았다. 

결국 80분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얼굴을 눈발처럼 때린 건 사실 웃음이 아니라 황폐해진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일본 고전극의 거장인 아빠 ‘보’는 놀이동산인 ‘원더랜드’, 다정한 엄마 ‘부’는 아이돌 그룹 ‘보이즈 보이즈 보이즈’ 콘서트, 딸 ‘피클’은 신흥 사이비 종교 모임에 가야 하는 상황. 

하지만 임신한 강아지 프린세스가 곧 새끼 출산을 앞둔 만큼 누군가는 집에 남아야 한다. 서로 나가야 한다고 악다구니를 쓰다 세 사람 모두 쇠사슬에 묶이고 만다.

이 복서들의 치열한 싸움을 밀도감 있게 그린 ‘밖으로 나왓!’은 한층 깊어진 ‘노다 히데키 월드’를 체감하게 한다. 이야기와 관계가 뒤엉키는 상황에서 막판에 메시지를 안기는 스트레이트 펀치 같은 묵직함이다.

4년 전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과정에서 숨은 폭력성을 드러낸 ‘더 비’, 3년 전 샴쌍둥이를 통해 불안전한 인간관계를 그린 ‘반신’의 장점들이 한층 더 깊어진 느낌이다. 

엄마 역, 연출, 극작 1인 3역을 맡은 노다 히데키는 기묘하면서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인물과 상황 묘사를 통해 소통의 장벽에 가로막힌 현대인의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려낸다. 극이 끝난 후 오싹함까지 느끼게 되는 이유다. 

‘더 비’처럼 올리비에상 수상자인 여배우 캐서린 헌터가 남자 캐릭터인 아빠를 연기하는 식의 성별이 바뀐 캐스팅과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공연하는 등의 익숙한 노다 히데키 식 장치가 한층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일본의 인간문화재 다나카 덴자에몬 제13호가 참여해 일본 전통극 ‘노’의 방식을 살린 점도 특기할 만하다. 

국립극단(예술감독 이성열)의 초청으로 23일 개막해 2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랐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차례대로 올림픽을 앞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3개국 예술가들이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문화올림픽’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