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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오빠, 어서 도라오세요”… 팽목항서 어린이날 보내는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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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오빠, 어서 도라오세요”… 팽목항서 어린이날 보내는 동심
  • 이솔 기자
  • 승인 2014.05.06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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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머물며 수색작업 결과를 확인하는 이곳은 지난 16일 사고 직후부터 한동안 어린이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의 수색작업이 본격화되면서 24시간 시신이 행정선부두에 도착한다. 피붙이의 주검을 확인한 가족이 터뜨리는 통곡이, 늑장구조와 안이한 대처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하루종일 항구를 뒤덮는다.

5월5일 어린이날. 비극의 공간에 모처럼 아이들이 찾아왔다. 이른 아침부터 부모의 손을 붙잡고 아이들이 밀려들어왔다. 팽목항 외곽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아이들은 왔다.

엄마 품에 안긴 세살박이, 양팔로 부모 팔을 붙잡고 장난을 치는 초등학생, 또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중학생이 어린이날 팽목항에 왔다.

왼쪽 가슴에 단 노란 리본만 아니라면 설핏 나들이라도 온 것 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왁자지껄은 잠시뿐.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는 실종자 가족지원 상황실 인근 '국민 응원 메시지 천막' 게시판 앞에 멈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웃음을 거뒀다.

아이들은 게시판에 붙은 메모지에 담긴 사연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렸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노란 메모지에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적어 넣었다.

'언니 오빠들 빨이 낳아서 돌아와요', '어서 도라오세요…'.

철자법은 틀리지만 언니 오빠들의 귀환을 기원하는 동심만큼은 분명히 전해졌다.

초등학교 5학년 최모양은 노란 종이에 '살아있다는 것에 죄책감이 듭니다. 꿈도 펼치지 못하고 돌아가신 언니, 오빠들에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그러고는 엄마 품에 안겼다.

할머니와 함께 왔다는 초등학생 이군은 직접 본 팽목항의 풍경이 낯설었는지 '국민 응원 메시지 천막' 게시판에서 한 발치 떨어져있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손을 잡아 이끌자 못 이긴 척 천막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할머니가 보고 있던 노란 종이에는 '사랑하는 우리 아기. 이 할머니가 키워준 우리 OO이 보고 싶다. 빨리 엄마 아빠 품으로 돌아오기를 빈다'고 적혀있었다. 이군은 이 사연을 따라 읽고는 이내 울먹거리며 할머니 손을 꼭 붙들었다.

부모 손을 잡고 게시판을 살펴보던 한 어린이는 아빠에게 다가가 "저도 써볼까요?"라고 허락을 구했다. 그러고는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 슬픔을 나눌게요'라고 적었다.

가족지원 상황실 건너편 방파제 난간에 설치된 펜스에는 노란 리본 수백개가 매달려 있다. 리본에는 '빨리온나. 나는 우예 살라고', '작은 기적이 큰 기적을' 등의 글귀가 적혀있었다.

한 아이는 리본에 적힌 글귀를 일일이 살펴보고는 쓰고 싶은 말이 생겼는지 펜을 찾았다. '언니 오빠들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를 리본의 빈 공간에 채워넣은 뒤 바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방파제에 설치된 조계종 임시 법당과 기독교 기도실에서는 어른 틈에서 초등생들이 기도를 했다. 2~3학년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은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108배를 올렸다.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데리고 왔다는 한 중년 남성은 "어린이날이지만 아이들도 오고 싶어해 아침 일찍부터 준비했다"며 "막상 와보니 기분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아들 손을 꼭 붙잡고 팽목항 곳곳을 살펴보던 한 엄마는 "같은 부모의 심정으로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희생자 가족에 너무 미안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날이긴 하지만 아들에게 실제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TV에 많이 나온다고 해도 이곳에서 느껴지는 만큼은 아니었다. 아이도 느꼈는지 훌쩍거리더라"고 말했다.

생면부지의 언니 오빠들에게 보내는 동심의 메시지는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 떨고 있는 실종자 가족에게는 작지만 따뜻한 위로가 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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