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정당과 대권 주자들의 경선레이스가 본격화됐고, 야권 주자들의 호남 쟁탈전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호남 정가를 양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양당 경선 주자들은 첫 경선대결장인 호남에서의 성패가 향후 대선 정국을 뒤흔들 가늠자 겸 방향타가 될 것으로 보고 앞다퉈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모두 광주에서 전국 첫 경선을 치른다.
민주당은 27일, 국민의당은 25일이다. 1주일 안에 호남권 승자가 가려진다.
민주당은 22일 전국 250개 선거구에서 당원과 선거인단 동시 투표에 들어가고, 24일 광주에서 후보 합동토론회, 25∼26일 호남 경선인단 ARS투표에 이어 27일 광주여대에서 호남권 순회투표를 실시한다.
순위는 당일 순회투표 후 ARS 모바일을 합산해 발표된다. 텃밭이자 야권 심장인 호남에서 1위를 차지할 경우 전체 선거판도를 리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각 캠프의 판단이다.
국민의당도 당의 기반인 호남에서의 경선 흥행이 향후 대선정국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다고 보고 ‘호남 공들이기’에 매진하고 있다. 광주·전남·제주를 아우르는 호남권 경선은 특히, 정당 사상 처음 실시하는 완전 국민경선(오픈-프라이머리) 방식의 현장 투표여서 성공 여부에 대한 우려와 함께 지역 정가의 관심도 모아지고 있다.
바른정당도 19일 호남에서 권역별 첫 정책토론회를 개시했고, 자유한국당도 24일 호남권 토론회를 열 계획에 있다. 민중연합당과 정의당 등 진보정당도 대선모드로 전환, 인력 충원 등에 나섰다.
대선 주자들, 특히 야권 후보들은 텃밭 호남이 최대 승부처이고 호남 민심이 대선의 풍향계라고 보고 호남 표밭갈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탄핵 선고 직후 진도 팽목항을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종교 지도자들을 만난 지 10일만인 20일 다시 광주로 내려와 ‘호남 공약’을 발표할 예정이다.
경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광주 출신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도 21일께 광주로 내려와 문 후보 지지를 호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추석 이후 6개월간 ‘광주 특보’를 자임하며 매주 1박2일 간 호남에서 지내온 부인 김정숙(63)씨도 올해 설 연휴 이후에도 매주 전남지역 섬을 돌며 섬사람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호감도 1위에 오른 안희정 후보는 기세를 몰아 “(문)재인 산성을 넘어 서겠다”며 호남을 누비고 있다. 헌재 탄핵 심판 선고 직전에 1박2일간 광주를 방문한지 10일만인 19일 다시 광주행이다. 이번엔 멘토단장인 박영선 의원과 전략총괄 이철희 의원이 함께 했다. 토크콘서트, 청년창업인과의 만남 등이 이뤄졌다.
아내 민주원씨도 17일부터 2박3일 간 광주, 전남 곳곳을 누비며 내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중교지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고견과 애로사항을 듣고 저녁에는 전통시장을 찾아 청년들과 소통했다. 멘토단장 박 의원은 이번주만 3번째 호남행이다.
이재명 후보는 아예 첫 순회투표지인 호남에 올인하기 위해 19일부터 광주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기로 결심했다. 특별한 일정이 있을 때만 서울 등 타지로 이동하고 그 외의 시간은 모두 호남에 쏟아붓겠다는 일종의 배수진이다.
첫 순회투표 지역인 호남에서 2002년 당시 지지율 5%였던 노무현 후보가 광주의 선택으로 후보가 됐고, 결국 대통령까지 됐던 것처럼 호남에서 대반전을 이뤄내 ‘어게인(Again) 2002’를 실현하겠다는 승부수라고 캠프 관계자는 밝혔다.
국민의당 경선주자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안철수 후보는 첫 순회경선을 앞두고 금명간 1라운드가 치러질 광주를 방문할 예정으로 일정을 조율 중이다.
외곽조직인 ‘광주내일포럼’ 등이 주축이 된 ‘국민광장 광주’ 발대식에 맞춰 광주를 찾을 것으로 전해졌다.
호남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손학규 후보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기 앞서 19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헌화·분향할 예정이다.
손 후보는 “5월 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일궈낸 민주주의를 국민들이 보다 안전하고 더욱 행복해지는 7공화국의 국민주권시대로 승화,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지난 18일에는 강진 다산초당을 찾아 “다산의 개혁사상으로 나라를 구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